나는 잠든 도시다. 하루의 끝자락에서 불빛들이 하나둘 꺼지고, 자동차 소리와 발걸음이 멀어지는 그 순간부터, 나는 나만의 숨을 쉰다. 낮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내 거리를 채우고, 욕망과 분노, 환희와 절망이 뒤섞여 나를 지나간다. 하지만 밤이 오면, 나는 그 모든 것을 내 안에 고요히 묻는다.
나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. 그 대신 너희가 흘린 말과 눈빛, 감춰둔 비밀들을 아무 말 없이 받아들인다. 창문 너머 새어 나오는 빛, 간신히 잠든 아이의 숨결, 혼자 술잔을 비우며 한숨 짓는 사람의 목울대. 나는 그 모든 장면을 알고 있다. 말없이 품고, 말없이 덮는다. 나는 침묵으로 너희를 안는다.
도시는 잠들었지만, 나는 잠들지 않는다. 밤이 될수록 나는 더 넓어지고, 더 깊어진다. 어두운 골목마다 스며 있는 쓸쓸함, 불 꺼진 건물 안의 생각들,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마지막 노래 한 줄까지도 나는 놓치지 않는다. 나는 잠든 것처럼 보이지만, 사실 가장 깨어 있는 건 나다.
어쩌면 너희는 모를 것이다. 낮 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상처를 삼켰는지. 누군가의 이별, 싸움, 고장난 약속들. 도시의 낮은 언제나 분주하고 화려하지만, 그 안에는 깨진 마음들이 부서진 채 흩어져 있었다. 밤이 되어야만 비로소 그 조각들이 고요히 자리를 잡는다. 나는 그 파편들을 조심스럽게 모으고, 아무 말 없이 다독인다.
가로등 아래 생긴 그림자들이 너희보다 먼저 지쳐 주저앉고, 멀리서 개 한 마리 짧게 짖고는 사라진다. 그 틈에서 나는 너희가 말하지 못한 진짜 이야기들을 듣는다. 낮에는 보여줄 수 없었던 얼굴, 부드러워지지 않았던 말, 차마 울 수 없었던 눈물. 나는 그것들을 안다. 그리고 내 품 안에 조용히 숨긴다.
나는 잠든 도시다. 아침이면 다시 웃는 얼굴로 너희를 맞이하겠지만, 이 밤 동안 나는 너희가 버리고 간 것들을 정리하고, 그 흔적들을 가만히 치운다. 그렇게 이 도시의 밤은 깊어지고, 나는 그 안에서 더 깊은 사랑과 더 깊은 고독을 품는다.